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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리뷰

영화 천문 줄거리·결말 해석|장영실은 왜 역사에서 사라졌을까?

by 93꼰대갬성러 2024. 4. 18.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보기 전에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을 각각 알고 있었을 뿐,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한 사람은 조선의 왕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낮은 신분에서 출발해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조선을 대표하는 과학기술자가 된 인물이다.

영화는 역사에 기록된 두 사람의 업적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질문에 집중한다.

특히 장영실은 세종 24년인 1442년 안여가 부서지는 사건으로 처벌받았다는 기록 이후 행적이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영화 <천문>은 바로 그 빈 공간에 상상력을 더한다.

 

세종은 왜 그토록 아끼던 장영실을 처벌해야 했을까.

그리고 장영실은 마지막까지 세종에게 어떤 신하였을까.

실제 역사와 영화적 상상이 섞여 있지만 한석규와 최민식의 연기가 더해지면서 마지막에는 정말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영화였다.

 

※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의 결말까지 다루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영화 천문 정보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2019년 12월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사극 영화다.

한석규가 세종대왕을, 최민식이 장영실을 연기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도 두 배우의 만남이었다.

특히 한석규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을 연기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천문>에서 다시 한번 세종을 맡았다.

하지만 <천문>은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삶을 그대로 재현한 역사영화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역사에 기록된 사건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두 사람의 관계와 장영실의 마지막을 영화적인 상상으로 채운 작품에 가깝다.

이 점을 알고 보면 영화를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다.

2. 명나라의 압박과 위기에 빠진 장영실

영화는 안여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의 상황에서 시작한다.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도착해 천문 연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 속 명나라는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라며 조선의 천문기구를 없애고 제작자를 명나라로 보내라고 압박한다.

세종은 분노하지만 당시 조선이 처한 국제관계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

조정 역시 갈라진다.

 

장영실을 보호해야 한다는 쪽과 명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천문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는 쪽이 맞선다.

그리고 장영실이 평생을 바쳐 제작했던 천문기구들이 철거되기 시작한다.

장영실은 세종에게 찾아가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세종은 차갑게 말한다.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고.

평생 자신을 믿어준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버린 것처럼 느껴진 장영실은 절망한다.

하지만 세종 역시 편한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영화는 시간을 약 20년 전으로 돌린다.

3. 세종과 장영실의 첫 만남

젊은 장영실은 낮은 신분이었지만 뛰어난 기술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사람이 세종이었다.

명나라에서 가져온 자료가 훼손돼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장영실은 자신의 능력으로 내용을 복원한다.

세종은 장영실을 불러 묻는다.

이것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장영실의 대답이 세종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대로 따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선에 맞는 것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세종이 원했던 것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나라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조선의 환경과 백성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낼 사람.

그렇게 왕과 기술자의 특별한 관계가 시작된다.

4. 노비였던 장영실을 중용한 세종

세종은 장영실의 재능을 인정하고 신분의 한계를 넘어 그를 중용한다.

당연히 반대도 심하다.

신분 질서가 엄격했던 시대에 낮은 신분 출신의 인물을 관직에 올리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신하들이 있었다.

하지만 세종에게 중요한 것은 출신보다 능력이었다.

장영실 역시 자신을 믿어준 세종의 기대에 보답한다.

대표적으로 영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자격루다.

장영실은 밤낮없이 연구하며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자격루 제작에 몰두한다.

 

마침내 자격루가 완성되고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세종과 장영실은 함께 기뻐한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단순한 왕과 신하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세종에게 장영실은 자신의 생각을 실제 기계로 만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장영실에게 세종은 자신의 신분이 아니라 능력을 처음으로 인정해 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영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군신관계를 넘어 서로의 꿈을 이해하는 동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5. 조선의 하늘을 보고 싶었던 세종

세종이 천문 연구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당시 농업사회에서 계절과 시간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백성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였다.

세종은 조선의 하늘을 직접 관측하고 조선에 맞는 시간과 역법을 알고 싶어 한다.

장영실은 그런 세종의 뜻을 기술로 실현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천문관측기구를 만들고 조선의 하늘을 관찰한다.

영화에서 이 과정은 단순한 과학기술 개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남의 기준만 바라보지 않고 우리 땅에서 직접 하늘을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영화 속에서 명나라와의 외교 문제뿐만 아니라 조정 내부의 정치적인 갈등까지 불러온다.

결국 세종과 장영실이 함께 만들었던 천문기구들은 철거될 위기에 놓인다.

6. 안여 사건과 세종의 계획

영화는 다시 처음의 시간대로 돌아온다.

장영실은 명나라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다.

세종은 그를 구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자신이 타고 갈 안여의 바퀴에 문제가 생기도록 만들어 사고를 일으킨 뒤, 안여 제작과 관리에 책임이 있던 장영실을 조선의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명나라로 끌려가기 전에 조선에서 장영실의 신병을 확보하려는 계획이었다.

세종은 사고의 배후를 추궁하면서 자신의 반대 세력까지 압박한다.

모든 것이 세종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 보인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등장한다.

훈민정음이다.

7. 장영실과 훈민정음을 연결한 영화의 상상

영화 후반부에서 세종이 새로운 글자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정치적인 압박 수단으로 등장한다.

장영실을 살리고 싶다면 새로운 글자를 세상에 내놓지 말라는 선택을 요구받는 것이다.

세종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선택이다.

자신이 아끼는 신하 한 사람과 수많은 백성을 위해 준비한 새로운 문자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영화 속 세종은 결국 장영실을 살리려고 한다.

안여 사고가 자신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장영실에게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 살아가라고 한다.

그런데 장영실은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기로 한다.

여기서부터는 특히 실제 역사와 영화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장영실이 훈민정음 반포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영화가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천문>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강하게 다가온 부분도 바로 이 설정이었다.

8. 천문 결말, 세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장영실

장영실은 국문 과정에서 자신이 안여를 망가뜨렸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왕을 해치려 했다는 취지의 말까지 하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

세종은 사실대로 말하라고 절규한다.

세종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

 

장영실 역시 세종이 자신을 살리려고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장영실은 물러서지 않는다.

자신 때문에 세종이 백성을 위한 새로운 글자를 포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준 왕.

그리고 자신의 신분과 관계없이 능력을 인정해준 사람.

영화 속 장영실은 마지막 순간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자신의 방식으로 돌려준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욱 슬프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종은 장영실을 살리고 싶어 한다.

장영실은 세종이 자신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지키려고 하면서 헤어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장면에서 꽤 많이 울었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그대로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런데 한석규와 최민식의 연기가 너무 좋다 보니 순간적으로 정말 이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9. 실제 장영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실제 장영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장영실은 세종 시대를 대표하는 과학기술자로 자격루를 비롯한 여러 과학기구 제작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리고 세종 24년인 1442년 세종이 사용할 안여가 부서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책임을 지고 처벌받는다.

 

문제는 그 이후다.

장영실의 후기 행적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정확히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확실하게 설명할 기록이 부족하다.

영화 <천문>은 바로 이 역사적 공백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종이 그토록 아꼈던 장영실은 왜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졌을까?'

 

그리고 영화는 여기에 하나의 상상력을 더한다.

장영실이 세종과 그의 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아닐까.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영화로서는 꽤 매력적인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10. 백성을 바라본 왕과 하늘을 바라본 신하

나는 조선이라는 시대의 모든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엄격한 신분제와 사회적 한계, 사대부 중심의 질서처럼 지금의 기준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 시대에 세종이라는 인물이 했던 일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새로운 문자를 만들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며 낮은 신분의 인물이라도 능력이 있다면 활용하려 했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 속 장영실 역시 그런 세종의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면 장영실은 그 꿈을 실제 기술로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백성을 바라보고 한 사람은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두 사람이 바라보던 곳은 결국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천문>은 역사적 사실만 알고 싶어서 보는 영화라면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실제 기록이 없는 부분에 상당한 상상력을 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종과 장영실이라는 두 사람의 관계를 하나의 드라마로 바라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한석규와 최민식이라는 두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가 굉장히 좋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만으로도 영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거의 전달된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을 구분해서 볼 필요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잘 만든 사극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이런 생각이 남았다.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정말 마지막까지 세종과 서로를 아끼는 군주와 신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실제 장영실의 마지막은 과연 어땠을까.